여러분은 벌레를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이름 모를 벌레가 몸을 스쳐가는 상상만 해도 공포감과 혐오감이 밀려오죠. 그런데 수많은 동물 중 인간만 벌레를 무서워하는 걸까요? 가끔 온라인 글을 보면 애완견이 아무렇지 않게 벌레를 잡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글을 보면 애완견이 파리를 너무 무서워해서 파리만 나타나면 겁에 질려 화장실로 숨는다는 글도 있으니까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레를 보면 징그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당연해졌을까요?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물공포증처럼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극심한 공포감을 느낍니다. 정신의학에서는 특정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질환을 특정공포증(Specific Phobia)이라고 정의합니다. 흥미롭게도 ‘벌레공포증(Entomophobia)’이란 증상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벌레공포증은 왜 생기는 걸까요? 아직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선천적으로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유전적 요인일 수도 있고 뇌의 신경회로 중 불안한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의 이상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부정적인 경험이나 트라우마 등이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정신의학적으로 벌레공포증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벌레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진화의 결과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맹독을 지닌 벌레에 물려 죽거나 고통스러웠던 경험, 벌레로 인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경험들이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정보로 기록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인간은 다양한 벌레 중에서도 유독 거미를 무서워합니다. 실제로 거미공포증(arachnophobia)라는 용어도 존재합니다. 몇 년 전 과학 메가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체코 프라하 찰스 대학교의 논문이 게재되었는데 해당 논문에 따르면 거미공포증은 거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전갈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수많은 거미 중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거미는 0.5%에 불과한데 왜 인간이 굳이 거미에게 공포감을 느끼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거미종은 남아메리카와 호주 대륙에서 발견되는데 현생 인류가 진화한 곳은 아프리카라는 점에서 고대 인류가 독거미를 무서워했을 이유가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연구팀은 인류가 거미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전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합니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전갈이 거미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거미를 보면 전갈을 보는 듯한 공포감을 느끼도록 진화했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한 해 2,000명 이상이 거미에 물린다고 보고되지만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사례는 드물고 1983년 이후에는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이 벌레를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진화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거미처럼 억울한(?) 벌레들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합리적인 오해라고 볼 수 있겠죠. 참고로 여러분이 벌레를 보고 단순히 징그럽다고 느끼신다면 이는 벌레공포증이라고까지 보기는 어렵습니다. 벌레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극렬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약물 치료나 비약물적 치료(정신치료, 최면치료, 행동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까요.
사실 인간이 벌레를 두려워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벌레를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1세기 로마의 학자 플리니는 “로마 귀족은 밀가루와 포도주로 기른 딱정벌레 애벌레를 즐겨 먹었다”고 적었고 중국에서는 벌레를 식용으로 한 지 3,000년이 넘었습니다. 서남부 윈난성에서는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대나무 벌레, 동충하초, 말벌 유충 등을 대접한다고 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인류가 먹는 곤충이 1700여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메뚜기와 귀뚜라미를 가장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벌레를 먹는 건 비단 외국의 일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시간이 흘러 벌레가 인간의 주식이 된다면 그때는 벌레를 보고 두려움을 느끼기보단 군침을 흘리게 되지 않을까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벌레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