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라면 집에 하나 이상은 무조건 있는 물건 립스틱
아이의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주기도 하죠.
여자는 평균적으로 사춘기때 립스틱 바르기 시작한다고 해요.
남성의 경우도 입술이 생기 있어보이려고 붉은색 립밥을 바르는데, 립스틱을 바르지는 않죠.
여성들은 립스틱을 언제부터, 왜 바르게 되었을까요?
립스틱은 정확히 누가 먼저 바르거나 만들었다는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 역사는 기원전 3500년전 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고대 매소포타미아 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치장을 위해 보석을 갈아 기름에 섞어 입술에 발랐다고 하며 고대 이집트인들도 해초나 독성이 있는 아이오딘, 브로민 등에서 추출한 염료를 썼고, 클레오파트라는 딱정벌레와 개미로 만든 붉은 색 화장품을 썼다고 해요.
그 후 고대 이집트에서 고대 그리스에 립스틱이 전파되었는데, 이집트 와는 달리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 할수 없어 집안에서 현숙한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야했던 여성들은 주로 빨간 물감과 독한 포도주를 섞어 만든, 튀지 않고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색깔의 립스틱을 발랐다.
지나치게 밝은 색의 립스틱은 매춘부들의 전유물 이었다.
붉은 입술 색은 붉은 염료와 포도주와 양의 땀, 사람의 침, 악어 배설물과 같은 특별한 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그리스가 멸망하고 기원전 150-31년 사이에 로마에서는 립스틱은 다시 높은 인기와 낮은 규제로 돌아갔다.
이 시점에서 립스틱은 남녀 모두가 사용했으며 사회 계층과 계급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 되었다.
일례로 후대에 폭군 으로 기록된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줄여서 네로황제의 황후인 Poppaea Sabina 황후는 화장을 위해 100명 이상의 시종을 고용했다고 한다.
물론 황후만 화장을 위한 시종을 고용한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부유한 로마 여성들은 특별히 훈련된 화장과 헤어스타일링 노예인 cosmatae를 집에 두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강대 했던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무너지면서 유럽에서는 일상생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중세 암흑기 에 돌입한다.
천주교의 힘이 강세였고 인세에 대한 두려움을 사후세계에 대한 열정으로 이겨내려 했기에 육체에 집착하는 것을 죄악시했던 중세 사람들에게 있어,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는 악마의 화신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얼굴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창조물에 대한 도전과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기에, 당시의 여자들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욱더 아름다워 질려는 인간의 욕구를 완전히 억누를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몰래 약초나 염료를 입술에 발랐다고 한다.
서기 800년대부터 콘스탄티노플에서 보석 뚜껑이 달린 화장품 용기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립스틱을 비롯한 화장품에 대한 상류층의 열광이 다시 돌아왔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중세암흑기에는 립스틱 사용이 감소 했지만,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부 립스틱이 성행했음을 알수있다. 1200년대의 이탈리아 사회의 여성들이 관행적으로 밝은 핑크 입술 컬러를 바른 반면, 하층민들은 그들의 열등한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는 흙색 같은 붉은 톤으로 입술을 칠했다.
시간이 흘러 1500년대 경 영국 사제들은 입술 칠하는 것을 ‘사탄의 작품’으로 비난하려고 했지만,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전형적인 엘리자베스 패션의 일부분인 진홍색 입술을 만드는 데 사용된 코치닐 염료, 아라비아고무, 계란 흰자와 무화과 밀크 혼합물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의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 립스틱과 분 사용량을 늘려나갔습니다.
몇몇 기록에 의하면, 엘리자베스 여왕은 임종시 입술에 1cm가 넘는 두께의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영국인은 립스틱을 현금 대용으로 자주 사용할 정도로 립스틱을 사랑했다.
이 립스틱 열풍은 대항해 시대가 열림과 무역 항로 개척으로 인해 국가의 급격한 부의 증가에 더불어 “생명, 아름다움, 형태 및 색상의 재발견”이라는 르네상스 시대 정신에 맞물린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로코코 시대의 립스틱 열풍
비현실적일 정도로 몸치장에 열중했던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와 영국 귀족들은 남녀가릴 것 없이 립스틱에 열광했다.
이 시대에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립스틱을 발랐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는 입술 화장에 대한 규칙을 제정할 정도로 민감하게 립스틱 유행을 이끌었다.
당시의 유행은 토실토실하면서도 얇은 느낌이 드는, 진주처럼 둥근 입술이었다.
또한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은 완벽한 화장술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다가 과로사 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화장에 집착했다.
재밌는 것은 로코코시대로 대표되는 1770년대 영국 정부에서 립스틱을 비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결혼에 앞서 립스틱을 발라 남성을 유혹하면 유죄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법이었다.
립스틱을 일종의 요술로 인식한 것이다.
1800년대는 중세 못지 않게 화장이 천대받던 시대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화장은 무례한 짓이라고 선언하면서, 매춘부와 배우를 제외한 여자들은 화장을 거짓된 것으로 치부하며 멀리했다.
19세기 초반에 마치 폐결핵에 걸린 것처럼 창백하고 아파 보이는 얼굴이 유행하면서, 여성들은 화장술보다는 각종 다이어트와 약품으로 자신의 외모를 유행에 맞게 꾸몄다. 화장 산업이 사라지다시피 했던 1800년대는 립스틱의 암흑기였다.
남녀 관계없이 사회 계급을 나누던 도구로 쓰였던 립스틱.
이제는 여성에게만 제한을 둔 성차별로 변질된 것이다.
약 100년동안 금기시 되어오던 여성의 립스틱 사용은 1880년대 파리의 한 화장품 브랜드 겔랑(Guerlain)의 립스틱 대량생산으로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파리의 화장품 브랜드 겔랑은 1880년대에 최초로 립스틱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립스틱은 버터와 왁스를 혼합한 자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립스틱 바르기는 여전히 비밀스럽게 유행했기 때문에 연극 무대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Sarah Bernhardt)는 1800년대 후반에 공공장소에서 자유롭게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발라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섬에 따라, 여성의 메이크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1912년 미국에서는 여성인권운동가들이 아주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뉴욕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화장의 자유가 펼쳐진 순간이다.
20세기 초 화장이라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화장품 업계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미국의 발명가 모리스 레비(Maurice Levy)는 슬라이딩 메탈 튜브 모양의 첫 립 컬러를 선보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립스틱의 탄생이다.
이러한 현대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분쇄 곤충, 밀랍과 올리브 오일로 립스틱을 만드는 일반적인 미국 조리법은 입술에 바른 후 몇 시간 후에 썩은 냄새가 날 정도로 열악했다.
또한 많은 립스틱 공식은 여전히 잠재적으로 독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의회는 1938년까지 화장품의 안전성을 보호하기 위해 효과적인 법령을 통과시키기 못했다, 이후 미 의회가 화장품의 가내 수공업자들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대량생산 시대가 열렸다.
헐리우드 메이크업으로 유명한 맥스펙터(Max Factor)사는 1940년 세계 최초로 잘 지워지지않는 립스틱을 발명해 많은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이후 여러 명품 브랜드가 화장품사업에 뛰어들면서 화장품업계 전쟁이 발발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립스틱의 디자인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샤넬에서 1950년 Case for lipstick and the like’ 제목의 립스틱 특허(US2600811A)를 출원했다.
정사각형의 메탈 케이스에 담긴 이 립스틱 디자인은 최근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최초에는 남녀 구분 없이 치장을 위해 쓰던 립스틱은 사회적 계층을 가르는 도구로 쓰였다가 사용이 금지 되는 등 여러 우연곡절이 있었지만 끝내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립스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지금 립스틱 사용하는데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색을 고르는가?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