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의 목소리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을까?

작성자 마인네

여성의 목소리가 일상을 지배하다

제목만 보시면 오해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영상은 인간이 아닌 기계의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기계음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버스, 지하철, 여객선, 여객기 등 대중교통 안내음은 모두 여성의 목소리로 나옵니다. 시리, 빅스비 등 인공지능의 목소리도 여성의 목소리입니다. 심지어 아파트에서 각 세대에 안내하는 공지사항도 여성의 목소리죠. 실제로 공식적인 안내사항이 남성 목소리의 기계음으로 나오는 경우는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왜 여성의 목소리가 기계음의 기본값이 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것은 전 세계의 공통적인 특징일까요?

사실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남성의 목소리보다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죠. 우리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해볼까요? 여러분은 인공지능 스피커를 만드는 기업의 오너입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판매량도 극대화할 수 있겠죠? 인공지능 스피커 개발을 모두 마친 후 목소리 설정만 앞두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그냥 기분에 따라 결정할까요? 저라면 고객들이 어떤 목소리를 더욱 선호하는지 조사한 후 결정할 것 같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표적인 인공지능 스피커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존 알렉사 여성, 구글 어시스턴트 여성, 마이크로소프트 코티나 여성, SKT 누구 여성, KT 지니 여성, 애플 시리의 경우 환경 설정에서 남성과 여성 중 하나의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시리도 초창기에는 여성 목소리가 기본값이었습니다. 그러다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의 기본 설정이 여성 목소리인 것이 성차별이라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남성의 목소리도 설정값에 추가된 것이죠. 앞서 언급한 제품들이 한국에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여성 목소리의 기계음이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보입니다. 

연구 결과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2008년 미국 인디애나 대학의 칼 맥도먼(Karl MacDorman) 교수는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동료 연구원들을 남성과 여성 그룹으로 나눈 후 컴퓨터가 합성한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각각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두 그룹 모두 여성의 목소리가 더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연구결과가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2017년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20여 년 전 스탠퍼드 대학의 클리포드 나스(Clifford Nass)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인용하며 분야에 따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목소리가 달라진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컴퓨터 교육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서비스의 경우 남성과 여성 모두 남성 목소리를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사랑이나 관계와 같은 분야에서는 여성 목소리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실제 사례들

최근에는 전문성과 신뢰감을 중시하는 기술의 제품이나 주식 거래 관련 앱에서는 남성 목소리를 기계음으로 설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기계의 목소리가 젠더 위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신뢰감을 주는 전문성은 남성의 목소리로 설정하고 친절한 안내는 여성의 목소리로 설정하는 것이 기존의 젠더 위계와 동일하다는 주장입니다. 목소리 선호도에 대한 논란이 일자 네덜란드의 버추 노르딕(Virtue Nordic)이라는 광고 회사에서는 Q라는 중성 목소리를 개발했습니다. Q의 목소리 주파수는 145헤르츠에서 175헤르츠 사이로 남성과 여성의 중간 음역대에 해당합니다. 제작사는 Q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4,600명의 목소리를 샘플링하여 Q를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Q의 목소리를 잠시 들어보시죠? 어떠신가요? 중성 목소리가 더 편하게 들리시나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과 기계가 원활한 상호작용을 하려면 인간이 기계로부터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겁니다. 이러한 차원에서는 사회적으로 익숙하다고 판단되는 목소리를 기계의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겠죠.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노스탯에 따르면 알렉사, 코타나,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의 이용자 중 90%는 현재 음성비서의 목소리에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아마존은 상품 주문을 음성으로 처리해 주는 알렉사가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로 작동할 때 매출 증대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과가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이 대부분의 기계음이 여성의 목소리로 채워지는 현상도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상에서 듣고 있는 기계음에 만족하시나요? 혹시 가장 선호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댓글로 의견을 남겨주시면 저도 꼭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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