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왜 교회가 많을까?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회에요. 우리나라는 작은 땅에 정말 많은 교회가 밀집되어 있어요. 10분만 걸어도 교회를 몇 개씩 볼 수가 있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불교가 수용된 시기는 4세기 고구려, 일본으로 불교가 전파된 시가는 서기 538년, 한국이 일본보다 일찍 불교가 전래되었어요. 이후 삼국의 다른 나라에도 전파되면서 정치, 문화,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는데, 불교는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종교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 불교가 아닌 서양의 뿌리를 둔 기독교가 지배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거죠.

기독교가 창교되고 근 2천 년 동안 전 세계에 전파되었지만 기독교가 종교의 주류로서 성공한 지역은 전통 종교가 빈약한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정도였어요. 그 외에 아랍이나 인도, 중국,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일본처럼 전통적으로 기존의 종교 색채가 강한 나라에서는 기독교가 고전을 면치 못했죠. 한국은 자국의 토속신앙이나 오래된 전통 종교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짧지만 크게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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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위 교회가 우리나라에 있어요. 바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인데, 1958년 당시 22세였던 조용기 전도사는 신학교를 함께 졸업한 최자실 전도사와, 서울 은평구 대조동 공동묘지 근처에 미군부대의 초라한 천막을 치고, 최자실의 가족들과 비를 피하던 할머니 한 명으로 5명에서 시작되었어요. 신자가 늘어나 1968년 당시 모래벌판이던 여의도에 새 교회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고 1979년에 10만 명, 1982년에 20만 명, 1984년에 40만 명, 1985년에 50만 명, 1992년에 70만 명을 달성했어요

기독교 국가로 유명한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 레이크우드 교회의 신도는 약 5만 명이죠. 90년대 잡지 ‘크리스천월드’가 세계 50대 교회를 발표했는데, 10위권 안에 5개가 한국교회 그중 1위와 2위가 한국교회였어요. 기독교는 어쩌다가 우리나라에 이렇게까지 커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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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시기는 19세기. 기독교 선교사로서 처음으로 한국에 발을 디딘 사람은 프로이센 프리츠 출신의 ‘귀츨라프’(K. F. A. Guetzlaff)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1832년 당시 서해안을 탐사하며 한문 성경을 조선인에게 전해줬어요.

그 후 1866년 영국인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가 선교와 통상을 목적으로 미국 국적의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지만, 대동강에서 조선인 병사에 의해서 사망했죠.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기독교는 토마스를 한국 최초의 순교자로 간주하고 있죠.

본격적으로 한국에 선교가 시작된 것은 1870년대 만주를 통해서인데,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파송으로 만주에 와 있던 ‘존 로스’(John Ross)는 만주의 개항장인 ‘영구’(營口)에서 조선 사람들을 만나 한국 상황을 듣고,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1879년에는 로스의 매부 매킨타이어가 백홍준, 이응찬 등에게 세례를 해줬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기독교 세례로 기록되어 있죠.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인이 조선에 들어올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사건이었어요. 같은 해 9월 박영호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동행한 이수정은 일본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미국에 한국의 변화된 상황을 설명하며 선교사를 보내달라 요청했고, 선교사들과 함께 성경 번역을 시작했어요.

한국에 실질적으로 선교가 시작된 것은 1884년 6월 일본 주재 미국 감리 교주 선교사 ‘매클레이’(Robert S. Maclay)가 조선에 와서 고종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다음이에요. 같은 해 9월 미국 공사관의 동의로 미국 장로교회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입국했는데, 그는 12월의 갑신정변에서 치명상을 입은 민영익을 구해 줌으로써 왕실과 깊은 교분을 맺었고, 그 후 1885년 4월 14일 그는 고종의 도움으로 최초로 서양식 병원이자, 조선 정부가 최초로 설립한 교육병원 ‘제중원’을 세웠어요.

1885년 미국 장로교회의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미국 감리교회의 ‘아펜젤러’(H. G. Appenzeller) 등이 입국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었고, 이들은 제중원의 업무를 도우면서 교육 사업을 시작해, 그 결과 배재, 이화, 경신, 정신과 같은 기독교 학교들이 설립되었어요. 정부는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를 원했지만, 초기 선교사들의 사역은 의료와 교육에 한정되어 있었고, 전도는 금지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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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894년 청일전쟁 이후에요. 청일전쟁이 보여 준 전통적인 유교의 한계와 동학농민혁명의 실패, 그리고 서양문명의 위력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정부는 갑오경장을 통해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한국 사회를 새롭게 만들 세력으로 부상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입문했죠. 기독교도들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주도하면서 근대적인 민족운동을 이끌어 나갔어요. 20세기 초 한국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에 사회적인 불안을 느낀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선교사들도 이들에게 진정한 신앙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이를 계기로 발생한 것이 1903년부터 시작해 1907년에 절정을 이룬 ‘대부흥운동’이에요. 이 부흥운동은 철저한 회개와 새로운 삶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각성을 통해 기독교는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내리게 되었어요. 더불어 신앙의 힘으로 나라를 구해 보려는 애국정신도 갖게 되었죠.

그러나 1910년 한일합병은 한국 기독교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일제는 기본적으로 기독교를 일본이 통제하기 어려운 반일적인 단체로 보았어요. 또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 암살을 기도했다는 소위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탄압했죠. 그뿐만 아니라 무단통치 기간에는 각종 교육령을 만들어서 미션 스쿨을 총독부의 통제 아래 두었고, 포교 규칙을 제정해 교회의 집회와 설립도 허가를 받도록 강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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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 교회는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의 기독교인들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듣고, 이 소식을 국내에 알려서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어요. 또한 이승훈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은 천도 교인들과 손을 잡아 3·1독립 운동을 했고, 기독교 조직을 동원해서 전국적으로 확산시켰죠. 전국의 기독교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고, 종교단체 가운데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었다고 해요.

이후 해방은 한국 사회에 큰 기쁨이었지만, 해방 직후 남·북의 기독교는 각각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었어요. 해방 전에는 의외로 북쪽에 개신교 세력이 많았는데, 공산당 세력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탄압해 많은 개신교 파들이 월남했어요. 자연스럽게 남한의 개신교 파나 북에서 온 개신교 파들은 기본적으로 ‘반공’의 색채를 가지게 되었어요.

해방 후 한국 기독교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세력이 되었는데,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 주요 민족 지도자들은 기독교인이었어요. 또한 1948년 제헌국회는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시작되었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기독교는 정부와 더불어 반공전선을 강화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유엔에 지원을 요청하는데 힘이 되었고, 특히 미국 기독교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막대한 원조를 제공해 줬어요. 이렇게 19세기 말에 들어온 기독교는 한국의 근대화, 독립운동, 건국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을 통해 오늘의 한국 사회를 건설하는데 기여했고, 그 결과 한국의 중요 종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많이 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의 기독교 신자는 전 인구의 0.5%에 해당하는 1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역사적으로 본다면, 한국에서 기독교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해방 후 미군정이 3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서구적인 경험과 영어 능력 때문에 미군정의 업무에 참여했고, 그 뒤를 이어 초대 한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어요. 이승만은 조선 시대부터 서양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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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 싶어 했는데, 해방 뒤 1945년 11월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귀국 행사에 “지금 우리나라를 새로이 건설하는 데 있어서 튼튼한 반석 위에다 세우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물로 주신 이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해서 세우려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석 삼아 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매진합시다”라고 했어요. 1946년 3·1절 기념식에서는 “한민족이 하나님의 인도하에 영원한 자유독립의 위대한 민족으로서 정의와 평화와 협조의 복을 누리도록 합시다”라고 했죠. 1948년 5월 27일 국회의원 예비회의에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됐는데, ‘하나님과 순국선열과 3천만 동포 앞에 삼가 선서함’이란 문구의 선서문을 채택했고, 4일 뒤 제헌국회 개원식에선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회 제1차 회의를 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라며 당시 제헌국회의원이자 감리교 서부연회장인 이윤영 목사를 단상에 불러내 기도를 부탁했어요. 대한민국 첫 국회가 목사의 기도로 시작된 것이죠. 이승만은 그해 7월 24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오늘 대통령 선서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한층 더 결심하며 맹세합니다”라고 했어요. 이승만은 말로만 하나님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해방 후 방송이라고는 국영방송인 서울중앙방송 하나만 있었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생긴 민간방송이 CBS 기독교 방송이에요. 서울중앙방송은 정부 수립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출번하고 첫 번째로 생긴 방송이 기독교방송인 거죠. 이후 1956년에 극동방송이 생겼는데 이 역시 개신교 복음방송이에요. 불교방송과 천주교 평화방송이 만들어진 시기는 이보다 한참 늦은 1990년대에요.

대한민국이 시작하고 1년 뒤인 1949년에 크리스마스는 빠르게 공식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었어요. 해방 직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가 누군지 개신교가 뭔지 성경이 뭔지 몰랐는데 공휴일로 지정된 거예요. 반면 불교의 석가탄신일은 한참 늦은 1975년 박정희 정권 때 공휴일로 지정되었죠. 석가 탄신일은 불교 신자인 용태영 변호사가 “성탄절이 공휴일이라면, 석가탄실일도 공휴권이 있다”라며 1973년 소송을 재기해 11차 변론까지 간 끝에 1975년에 겨우 공휴일로 지정되었어요.

개신교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르게 뻗어나갔고, 교육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대한민국에 개신교 재단이 설립한 유명한 대학만 해도 연세대, 이화여대, 숭실대, 성신여대, 덕성여대, 명지대, 서울여대, 인하대 등 정말 많은 반면, 가톨릭은 가톨릭대학교, 불교는 동국대, 원불교는 원광대로 압도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죠.

산업화 시기 전까지만 해도 교회는 완만한 성장을 보이기는 했지만, 주류 종교로 자리 잡지는 못했어요.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은 산업화 시대에 이루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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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80년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연줄 하나 없이 낯선 도시로 와서 노동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도 물론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의존할 곳이 필요했어요. 이렇게 정신적으로 빈곤함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갔고, 교회는 그들에게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어 소속감을 제공했어요. 덕분에 도시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고, 교회로 몰려드는 사람들에 발맞춰, 교회 역시 빠르게 도시에 집중되었죠. 한국종교사회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1950년에 3114개였던 교회는, 1980년에 21243개로 약 7배 증가했다고 해요. 평균연령이 높은 지역과 기성세대에 개신교 신자가 많은 것이 이렇듯 과거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현재 대한민국은 초대 대통령과 이후 대통령이 개신교 신자였기 때문에 정치권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독특한 종교이죠. 신세대로 갈수록 개신교 신자는 점점 줄고 있는 추세라고 해요. 하나님을 믿어야 천국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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