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는 남자를 보신 적이 있나요?
있다고 해도 흔하지는 않을 거예요.
치마는 여자의 의복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죠. 만약 남자가 치마를 입고 돌아다닌다면 지금까지는 받아 보지 못했던 여러 시선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여자는 바지, 치마 등 옷의 선택 폭이 넓어요.
하지만 남자는 바지밖에 없죠.
마음만 먹으면 못 입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남자는 치마를 입지 않는 걸까요?
치마는 바지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고대 인류는 남녀 모두 치마를 입었어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절대권력자였던 파라오부터 소박한 농부까지 모두 허리에 감는 치마를 입었어요.
품질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죠.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몸에 두르는 망토 형태의 ‘튜닉’을 입었어요.
튜닉은 지위가 높거나 엘리트 계층의 상징과도 같은 옷으로, 남녀노소 모두 입을 수 있었어요.
갑옷의 일종인 ‘로리카’조차 무릎이 드러날 정도로 짧은 치마 형태로 만들어졌어요.
남미 고대 아즈텍 문명에서도, 잉카 문명에서도, 모두 치마를 입고 있는 그림이 발견되었죠.
아시아권에서도 남녀 모두 치마를 입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이처럼 대부분의 고대 문화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치마가 만들어져 일반적인 복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어요.
만들어 입기에 쉽고 편하기도 했죠.
바지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거주했던 스키타이 유목 민족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스키타이 유목 민족은 가장 기본적인 복식으로 바지를 입었는데, 기원전 13~10세기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에서 양모로 된 바지가 함께 출토되었어요.
바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지리학자에 의해 작성되었어요.
페르시아, 동부 및 중앙아시아 기병들이 바지를 입고 오랫동안 말을 타도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실용적인 복식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바지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무시했어요.
4세기 중세 시대 서구에서는 귀족과 왕족들이 자주 전쟁터에 판금 갑옷을 입고 나가야 했어요.
전신에 착용해야 하는 갑옷이었기 때문에 다리도 갑옷으로 감싸야 했는데, 맨몸 위에 갑옷을 입으면 강판이 피부를 긁어 흉터가 생기기 십상이었어요.
그래서 얇은 비단이나 천으로 만든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갑옷을 입는 것이 유행이었어요.
이 시대부터 실용적인 이유로 남자와 여자의 복식이 달라졌다는 가설이 있죠.
남녀의 복식은 14세기 유럽에서 재봉이 발전함에 따라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남자의 치마가 여자의 치마보다 더 짧아진 것이었죠.
드레이프처럼 흐트러진 형태를 하고 있거나 천에 천을 겹쳐 걸치는 치마는 이제 입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치마를 입고 있는 남자들이 흔했어요.
그렇다면 왜 현재에 이르러서는 치마는 여자의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을까요?
이처럼 성별에 따른 복식은 유럽에서 성경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1604년,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라고 명령했어요.
이때 번역가들은 원어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부정확하거나 자유롭게 번역한 성경을 내놓았죠.
그렇게 번역된 성경은 읽기에도 내용을 따르기에도 쉬워 전 세계의 개신교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고착화되었어요.
신명기 22장 5절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라고 쓰여 있죠.
바지는 언제부터 남자들의 복식으로 자리를 잡았을까요?
바로크 시대 초기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거추장스럽고 과장된 실루엣 복들이 사라지고 실용적이며 편한 복장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이는 경제 강국이었던 네덜란드의 시민풍 복식과 활발한 해외 무역, 종교 전쟁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죠.
이때부터 바지가 통용되기 시작했고, 영국의 산업 혁명 시기가 되어서 ‘정장’이 유통되며 남성 복식으로 인정되기 시작했어요.
산업 혁명 시기에는 일을 할 때 빠르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옷이 중요했어요.
반면 여자는 일상생활을 하기에 치마가 더 적합했어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앉을 때도 치마가 더 편했고, 월경 때는 생리혈을 받기 위하여 가랑이 사이에 천을 끼워야 했는데 천이 비싸서 대부분 착용하지 않았어요.
치마를 입는 것이 실용적인 면에서도 위생적인 면에서도 더 편했죠.
여자의 치마 착용은 당시 출산율과도 관련이 있어요.
당시에는 자녀를 많이 두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임신을 할 때마다 바지 사이즈를 맞추거나 임산부용 바지를 따로 구하기보다는 치마를 입는 것이 더 보편적이었어요.
이렇게 치마는 여자의 의복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산업 혁명을 거친 서구 문화를 수용한 나라들은 정장을 남자의 의류로, 치마를 여자의 의류로 구분했어요.
즉, 성별에 따른 의복의 구분은 과거 유럽과 성경의 영향으로 규범화된 것이죠.
온대 기후 지역 일부에서는 남자들이 아직도 치마 형태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오늘날 서양에서 금기시되지 않는 남성 치마도 있을까요? 바로 킬트예요.
킬트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남성 치마로서 존중받고 있는 옷으로, 여자가 입는 치마와 입는 방식이 동일해요.
남자는 웃옷을 바지 안쪽에 넣어 입는데, 여자는 ‘정숙’의 규범으로 인하여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옷을 입지 못했어요.
바지를 입으면 몸매가 부각되기 때문이었죠.
그렇다면 여자들은 언제부터 자유롭게 바지를 입었을까요?
미국에서는 20세기까지도 여자의 바지 착용을 불법으로 제정한 도시가 있었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이 지나 자유롭게 바지를 입었어요.
프랑스는 1800년에 파리 여성 바지 착용 금지 규정을 제정하여 213년이 지난 2013년에야 공식적으로 폐지했어요.
여성 의복은 여성 해방이라는 사회적 화두와 함께 100년이 넘는 투쟁의 역사를 써내려 온 반면, 남성 의복은 바지가 등장한 이후로 큰 변화가 없었어요.
현대 사회에서 정장을 입는 여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하지만 치마를 입는 남자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죠.
현재 패션업계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기 위하여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이는 등 노력하고 있기도 해요.
성별에 따라 의류를 나누지 않고, 남자든 여자든 어떤 옷이라도 자유롭게 코디해서 입는 방향성을 가지는 변화라고 볼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