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은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서울)의 4대 문 중에 하나로 1396년에 짓기 시작해서 1398년에 완성되었어요.
서울에 남아있는 성곽 중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기도 하죠. 이러한 숭례문은 ‘남대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리는데, 말 그대로 남쪽의 대문을 뜻해요.
숭례문은 ‘예(禮)를 숭상한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문으로, 이것은 조선시대 건축에 있어서 남쪽 방향이 예를 뜻한다는 전통적 관습에 따른 거예요.
여러분들은 ‘국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아마 대부분 숭례문을 생각할 거예요. 왜냐하면 숭례문이 국보 1호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유산이 많은데, 왜 하필 숭례문이 국보 1호가 되었을까요?
제1호라고 하면 가치가 가장 높은 문화재에 부여되는 번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국보와 보물의 번호는 지정 순서일 뿐, 문화재 가치의 우선순위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해요.
그저 순서대로 국보로 지정할 때마다 번호가 붙여져 오늘의 체계에 이르게 된 것이죠.
그런데 1990년대의 신문을 보면 국보 1호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예술적으로, 또 기능적으로 더욱 대단한 석굴암이나 훈민정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인데, 이처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국보 번호를 순위와 상징으로 오해하고 있었어요.
과거부터 이런 오해가 계속 이어져 결국 2021년 2월 문화재청에서는 “국보에 더 이상 지정번호를 붙이지 않는다”라고 발표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릴 적부터 국보 1호를 숭례문, 보물 1호를 흥인지문으로 배웠기 때문에, 여전히 국보 1호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숭례문이 떠오르죠.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부터 숭례문은 국보 1호, 흥인지문은 보물 1호 식으로 국보 및 보물을 강조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풍토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자연히 국보 1호는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죠.
아마도 국보의 순번이 단지 유물과 유적을 관리하기 위해 지정된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면 숭례문은 왜 가장 먼저 국보로 지정되었을까요?
숭례문은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1호가 되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보물 1호였죠.
그리고 공교롭게도 일제에 의해 정해졌는데, 1933년에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수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통해 한양을 접수할 때 통과한 성문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의미를 두고 숭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했어요.
흥인지문이 보물 2호로 지정된 것도 당시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성한 통로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국보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숭례문’이 보물 1호, ‘흥인지문’이 보물 2호가 되었어요.
국보가 아닌 이유는 일본 본토가 아닌 곳에 국보가 있을 수 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결국 일본이 정한 보물 1호와 2호를 국보 1호와 보물 1호로 나누어서 재지정한 셈이 된 거죠.
물론, 숭례문과 흥인지문 모두 매우 우수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상식에는 아직 일제의 영향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